우리는 왜 슬램덩크에 열광하는가
더 퍼스트 슬램덩크 성공의 이유
1990년대 그때를 살았던 이들이라면 누구나 슬램덩크를 읽었다. 그때는 모두가 북산이었다. 학생들은 쉬는 시간, 점심시간이면 농구 골대로 몰려갔다. 파리채 블로킹, 불꽃남자 정대만, 누군가 ‘에어조던 하이 브레드를 신고 오는 날이면 그날 하루만큼은 강백호였다. 30년이 지난 지금 극장판 애니메이션 ‘더 퍼스트 슬램덩크’와 함께 북산의 시대가 다시 찾아왔다. n차 관람 붐과 함께 전국 관객 300만명을 돌파했고, 만화책 단행본은 서점에 깔리기 무섭게 팔린다. 굿즈를 파는 팝업스토어에는 긴 줄이 늘어선다. 추억팔이라고 치부하기엔 그 힘이 상당하다.
북산의 주전 5인방은 모두 언더독이다. 농구선수로서의 장점을 덮어버리는 치명적인 결점과 트라우마, 내면의 결핍과 상실에 시달린다. 농구를 ‘그깟 공놀이’로 치부했던 퇴장 전문 풋내기 강백호, 팀의 에이스이자 천재지만 이타적인 플레이를 모르는 서태웅, 듬직한 주장이지만 때론 리더의 무게에 짓눌리는 채치수, 2년의 방황 끝에 코트로 돌아온 체력이 턱없이 부족한 중학교 MVP 출신 정대만, 그리고 농구 선수로는 작은 키와 형의 부재라는 장벽 앞에서 자신감을 곧잘 상실하는 송태섭. 이들에게 ‘주인공이니까 승리했다’는 순진하고 편리한 이야기는 주어지지 않는다. 풋내기는 단 한 번의 슈팅을 위해 2만번의 연습으로 감을 익히고, 이기적인 에이스는 최후의 순간 앙숙에게 패스한다. 고릴라 주장은 어쩌면 농구 선수로서의 미래가 걸린 경기에서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철저히 팀을 위한 플레이를 택한다.
인물마다 차근차근 쌓아 올린 서사는 산왕공고의 결전에서 폭발하며 ‘성장의 이야기’로 완성된다. 상실과 방황의 이야기는 비단 주역들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대학 농구계 최고의 명장이었지만 제자의 불행한 죽음에 충격을 받아 은퇴하고 북산고 약체팀에 스스로를 유폐한 안한수 감독도 언더독 중 한 명이다. 원작 내에서 3점 슛 100% 성공률을 기록한 해남대부속고의 신준섭은 자신이 센터로서 경쟁력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하루 500개의 3점 슛 연습이라는 피나는 노력으로 최고의 슈터로 거듭난 ‘노력하는 범재’다. 슬램덩크는 나름의 방식으로 상처를 극복하고 전력으로 농구를 좋아하는 모든 인물의 이야기다. 작품의 따뜻하고 담대한 시선은 북산 5인방을 넘어 주변 인물의 세계에도 초점을 맞춘다. 작품 전체가 안 선생님의 재활기라고 정의하는 팬도 있을 정도다. “포기하면 그 순간이 시합 종료예요.” “결국 패인은 바로 나. 선수들은 최고의 플레이를 해주었습니다.” 팬들이 꼽은 최고의 명대사는 주인공 강백호가 아닌 다른 이들의 입에서 나왔다. 우정, 노력, 승리의 이야기라고 했지만, 슬램덩크의 최종장은 승리가 아닌 패배다. 세계관 최강자인 산왕공고와의 승부에서 모든 것을 쏟아낸 북산은 원작의 말마따나 거짓말처럼 패배한다.
역설적으로 슬램덩크가 단순한 흥행작을 넘어 걸작으로 남은 것은 이 미완의 여운 덕이 크다. 청춘은 결과가 아닌 과정이기 때문일 것이다. 원작자 이노우에 다케히코 ‘더 퍼스트 슬램덩크’ 개봉에 맞춰 한 인터뷰에서 만화책의 엔딩에 대해 “이야기의 핵심 부분에서 필연적인 형태로 끝낼 수 있어서 지금도 만족한다”고 말했다. 천방지축 강백호에게 채소연이 “농구 좋아하세요?”라고 물어본 지 30년이 흘렀다. 원작 완결로부터는 26년이다. 극장판 애니메이션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다시금 북산의 시대를 소환했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이노우에 다케히코 감독은 영상화된 적 없는 원작의 마지막 에피소드 산왕전을 택해 포인트 가드 송태섭의 시선으로 스토리를 재구성한다. 원작에서는 다루지 않았던 ‘가족의 이야기’를 가져왔고, 결과는 더할 나위가 없었다. 인물들의 서사를 쌓아 올리고 한 번에 터트리는 작가의 역량은 두 시간 남짓한 이번 작품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난다. 송태섭을 주인공으로 한 1998년작 단편 ‘피어스’에 등장했던 형 송준섭에 대한 설정을 다듬고 깊이를 더했다. 후끈 달아오른 산왕전의 코트와 서정적이고 정적이기까지 한 송태섭의 어린 시절을 교차하며 이야기는 켜켜이 밀도를 높여간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관통하는 감정은 불안감이다. 바다 너머로 사라진 형을 그리워하면서도 형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송태섭은 그래서 위태롭고 애처롭다. 자신의 속내를 감추기 위해 떨리는 손을 주머니에 넣고 애써 센 척해본다. “코트 위 강자들의 태연한 얼굴 뒤에도 각각의 삶이 있고 그곳까지 가는 길이 있다. 아픔과 상실, 잘되지 않는 것, 살아가면서 누구나 통과하는 길을 표현하고자 했다.” 감독의 말처럼 불안은 송태섭만의 감정이 아니다. 송태섭을 바라보며 자꾸만 송준섭을 찾는 어머니도, 막강한 상대와의 결전에서 자꾸만 의지가 꺾이는 북산의 다른 선수들도, 강백호의 부상을 눈치챘지만 차마 벤치로 불러올 수 없었던 안 선생님도, 심지어 최강자 산왕공고의 에이스 정우성마저 저마다의 불안을 안고 있다. 하지만 송태섭의 과거가 성큼성큼 걸어와 산왕고와의 시합에 이르렀을 때 이명헌과 정우성의 더블팀 수비를 끝끝내 뚫고 돌파해내는 순간, 포기하지 않는 언더독의 삶은 불안을 이겨낸다.슬램덩크 연재 이전에 태어난 MZ세대 관객들이 말 그대로 ‘더 퍼스트’ 슬램덩크일 이번 작품에 빠져드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원작의 질감을 그대로 옮겨온 듯한 기술적 성취와 그 시절 추억은 그저 거들 뿐, 관객을 ‘림(rim)’에 데려오는 것은 온전히 공감의 힘이다. 북산은 진심으로 농구를 좋아했고, 우리는 그런 북산을 좋아했다. 우리는 그 시절 북산이었다. 30년이 지났지만 우리는 여전히 북산이다. 영광의 순간은 언제나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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